사진=차이나미디어DB



오는 8월 24일은 한·중 수교 28주년이 되는 날이다. 여느 때 같으면 한중 우호분위기가 매체를 통해 띄워져야 할 텐데 아주 조용하다 못해 냉랭한 분위기다. 이를 잘 대변하듯이 중앙일보 “2020 한국인 정체성 조사“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적대감이 5년 사이 16.1%에서 40.1%로 가장 큰 폭으로 높아졌다. 2015년 조사에서는 한국인 절반(50%)이 우호적인 감정을 보였지만 2020년엔 20.4%로 급감했다. 이른바 한국 내 혐중 정서는 상향되었고 중국에 대한 친근감이 대폭 하락했다는 반증이다.

 

도대체 5년 동안 무슨 일이 한중관계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지난 유구한 역사에서 중국과 한반도는 애정과 갈등으로 혼합된 은원(恩怨)의 역사였다. 수교 이후 이십년간은 밀월관계를 유지하였다. 하지만 2016년 한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 한한령(限韓令) 조치와 중국 정부의 비공식 제재는 한국 내수경기에도 적지 않은 상처를 주었다. 한한령 해제를 기대하던 상황에서 코로나 19사태로 상호 자유롭게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은 더욱 양국 간 교류협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더욱이 미·중 신(新)냉전의 짙은 먹구름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기대온 지금까지의 프레임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면서 우리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과거 냉전 시대의 종말을 알리는 수교와 함께 큰 시장, 가까운 이웃, 같은 문화권 등의 이유로 중국 시장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다. 초기 진입할 때만 해도 기업들의 장밋빛 희망이 넘쳤지만 지금의 중국은 국내기업들의 무덤이 되고 있다. 진입은 쉬웠지만 대내외의 변수에 흔들리고 현지화하기에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혔다. 중국은 장기간 경쟁력을 갖고 살아남기에는 분명 어려운 시장으로 변해 버렸다. 롯데그룹을 비롯한 적지 않은 기업들이 중국에서 철수하여 제 3국으로 발을 돌렸다.

 

중국은 왜 죽음의 땅으로 전락하게 된 것일까. 업계에서는 한국 중소기업의 중국 진출이 중국 내수 보다는 임가공위주였고, 대기업의 공급체인 사슬 구축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중국은 거대한 자본과 끈끈한 자기네들만의 네트워크 구축, 현지 업체의 경쟁력 강화, 보이지 않는 정부의 강력하고도 조직적인 후원과 애국심 마케팅 가세 앞에서 우리는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정치적 변수로 대표되는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은 결정타가 된 격이었다.

 

몇 가지 외형적인 변화는 작금의 상황을 여과 없이 반증하고 있다. 북경 조양(朝陽)구 왕징(望京)은 과거 한국인 교민숫자가 12만 명이나 될 정도로 '베이징속의 작은 한국'이었지만 지금은 2만 명 이하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현재 자동차와 삼성 스마트폰의 중국 점유율은 등외 밖으로 내 몰렸다. 특히 기업의 탈 중국화 현상도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6.0% 줄었다.

 

이런 탈 중국화 추세에서 미국은 한국에 중국을 배제한 “경제협력 네트워크(EPN)동참을 압박하고 중국을 염두에 둔 중거리 핵미사일 배치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중전선은 일본, 유럽연합(EU)의 대중국 의존도 낮추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이 미국의 반중전선에서 이탈해 ‘중국 편들기’를 요구할 전망이다.


이에 작금의 한중관계는 사드 때 보다 더 위기다. 미중 사이에 끼인 한국으로서는 “누구의 편에 들지 않는다”는 ‘균형 외교’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사안마다 이익 없는 명분과 명분 없는 국익추구, 이른바 ‘가치의 중심’ 과 ‘이익의 균형’의 충돌상황이 우리를 곤혹스럽게 만들 전망이다. 미국은 안보동맹과 가치동맹의 중심이다. 그러나 중국은 북한 핵과 남북관계, 교역에서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현 정부는 보수진영으로부터 중국 편향성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중은 공동운명체’라는 점을 일관되게 강조해 왔다. 그럼에도 일반 국민들의 반중 정서는 수교이후 가장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중국의 호혜적인 조치’ 와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대한 기대 심리가 실망으로 돌아섰다는 반증이다. 한중 양국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공교롭게도 한중 수교 기념일 전에 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중국 공산당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한국을 방문 중이다. 한중 관계증진과 협력강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로의 입장이 절실한 시점이다. 갈등 요소는 최소화 하고 협력 요소는 극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하지만 ‘힘의 외교’ 여파로 한국 내 혐중 정서가 만연되고 있다는 점은 중국이 신속하게 풀어줘야 할 숙제다.

 

이제는 중국이 화답할 차례다. 중국의 주변국 외교정책은 ‘친(親)·성(誠)·혜(惠)·용(容)’이다. 주변국 모두 중국이 ‘힘 있는 국가’는 되었지만 존중 받는 ‘매력 국가’라고는 여기지 않고 있다. 매력이 있을 때 친근한 이웃으로 다가설 수 있는 법이다. 수교 28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의 악몽은 서로 떨쳐 버리고 새로운 한중관계의 시발점이 되길 기대한다.



글/(사)한중지역경제협회 회장 이상기

정리/[중국망]장신신 기자 kiraz0123@126.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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